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일과 삶을 이어가는 티모시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는 매일 낮, 커피 한 잔으로 스스로에게 짧은 브레이크를 선물합니다. 두 도시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살아가는 그의 하루 속에서, 이 짧은 커피 타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잠시 벗어나는 순간(escaping)’이다.
이 영상은 그가 시간으로부터 잠시 이탈하는 그 순간, 티모시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입니다.

koffeeism(Video Essay)
video and text By hong jeong bin


(5min 25sec)
해운대에 위치한 바버샵 오키드에 다녀왔습니다. 바버 지미, 그리고 8년을 함께한 고양이 그들의 시간과 흔적이 공간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스튜디오 안 끊기지 않는 음악처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삶도 스쳐 지나가고 머리카락이 자라나듯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barbershop okid
(Video Essay)
(short format)
(short format)
video and text By hong jeong bin
(Full :7min 51sec)
MUSIC ISLAND
(Video Essay)
제주도, 매일 차를 운전해 한적한 장소에 차를 멈춰놓고 아름다운 자연을 스튜디오 삼아 기타를 연주하며 녹음하고 컨츄리를 노래하는 정지석을 만나고 왔다. 여유있어 보이지만 뮤지션으로서 누구보다 바쁘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하룻동안 그 고독을 동행 할 수 있는 시간을 담아왔다.
혼자 사는 일상에서 외로움은 그에게 익숙한 친구처럼 보인다. 그런 그 옆엔 가족과도 같은 밴드 WENDSDAY OFF가 있다.
"뭔가 기독교적이거나 불교적인 신이라기보단 어떤 존재가 있지 않을까?"
각자모두, 그리고 각자가 자신이 다 신일 수 있지요, 예전에 그런걸 봤어요, 사고가 났는데 무의 세계로 갔어요
그런데 신같은 사람이 나와서 물어보고 싶은거 물어봐라, 전생이라는게 있느냐 그것도 너고 저것도 너다."
"결국에 지금 인터뷰하는 당신도 나인거고, 내가 살았던 인생이였을거고 어쩌면 내가 앞으로 살아갈수도 있는 인생인거고
저의 밴드 멤버들도 다 똑같고,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다, 내가 될 수있는 것이 아닐까"
(Full length : 20min 12sec)





BLUES STUDIO RECORDING
(Video Essay : 3page)
이 글은 한 블루스 뮤지션을 따라간 2박 3일의 기록이다. 그는 한국 남쪽평야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녹음이 예정되어 있었고, 나는 카메라를 들고 그 일정에 동행했다. 인터뷰를 위한 질문지는 준비하지 않았고, 어떤 이야기를 끌어내야겠다는 목표도 세우지 않았다.
대신 그가 언제 깨어 있고, 어떤 순간에 말을 멈추고, 앨범 레코딩 과정중에 무엇을 쉽게 결정하고 결정하지 않는지를 지켜보았다.이 기행은 어디를 다녀왔는지보다 한 사람이 예술가로 존재하는 현재의 상태를 기록하려는 시도였다.
1. 일출 보러 가는 길 차 안에서.
아침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생활 리듬을 설명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냥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고, 여섯 시나 일곱 시쯤이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다고 했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그쯤 되면 깨어 있고,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다시 잠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시간을 정해놓고 자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피곤하면 열 시나 열한 시에도 잠들고, 그렇지 않으면 열한 시에서 한 시 사이에 잠을 청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새벽 두 시, 세 시가 넘어가는 날도 많았다고 했고, 그때는 그렇게 늦게 자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고 했다. 요즘은 그렇게까지 늦게 자지 않는다고 했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그 변화에 특별한 의미를 붙이지는 않았다.
오전 시간이 좋다는 말도 같은 톤으로 나왔다. 어떤 결심이나 깨달음처럼 들리지 않았고, 생활이 그렇게 흘러온 결과처럼 들렸다. 아무 일정이 없어도 일찍 눈이 떠지고, 일찍 눈이 떠지면 다시 잠들지 않는다고 했다. 작업 중일 때는 특히 그렇다고 했다. 녹음이나 믹스처럼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 있을 때는 잠을 자도 머리가 완전히 쉬지 않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자고 일어나도 계속 깨어 있는 상태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소리의 질감이나 곡의 순서 같은 것들이 계속 떠다닌다고 했다.
그날 아침도 그런 상태였다. 어제까지 녹음은 끝났고, 오늘은 믹스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었지만, 급하게 서둘러야 할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결과물은 존재하고 있었고, 오늘의 작업은 그 결과물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문제였다. 그래서 일출 이야기가 나왔다. 누가 먼저 꺼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 말이 나왔을 때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갔다 오면 된다는 정도의 합의였다.
차를 타고 나가기 전까지도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정확히 어디에서 볼지에 대한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멀지 않다는 말이 먼저 나왔고, 몇 킬로 안 된다는 말도 이어졌다. 그 말은 거리 설명이라기보다는, 지금 이 상태로 움직일 수 있다는 확인처럼 들렸다. 중요한 건 정확한 위치가 아니라, 이 아침에 이미 깨어 있고,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차 안에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작업 이야기로 옮겨갔다. 그는 믹스라는 작업이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고 말했다. 손을 대면 댈수록 바뀌고, 바뀌면 또 다른 선택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처음에 생각했던 방향과 멀어질 때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건 무엇을 더할지보다, 언제 멈출지를 결정하는 일이라고 했다. 조금 더 기다리면 더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과,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끝없이 미뤄질 것 같다는 생각 사이에서 계속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는 신곡 다섯 곡이 들어가고, 라이브 트랙도 함께 수록된다고 했다. 예전에 공연했던 실황 중에서 몇 곡을 골라 넣을 예정이라고 했고, 그래서 믹스가 특히 중요하다고 했다. 같은 곡이라도 어떤 순서로 배치하느냐에 따라 앨범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어제 선택한 것을 오늘 다시 들으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하루 자고 나면 사람이 달라지고, 감정도 달라지고, 귀도 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전날에 선택한 것도 다음 날 들으면 전혀 다르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고 했다. 왜 이걸 좋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고,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고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차이가 조금씩 줄어들었다고 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어제의 선택을 오늘 들어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감각이 생겼다고 했다.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고, 적어도 전부 뒤집고 싶을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선택을 쉽게 말하지 않았다. 선택을 안 하면 더 편할 것 같지만, 결국은 선택을 하지 않은 상태로도 다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고 했다. 피하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그때는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선택을 할 때,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오늘 들어보니 분명히 고쳐야 할 부분이 있으면 고치되, 어제의 선택 자체를 전부 무효로 만들지는 않겠다고 했다. 어제의 자신이 충분히 고민했고, 충분히 듣고, 충분히 결정했을 거라는 믿음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그러면 작업이 아니라 소모가 된다고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계속한다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는 블루스를 오래 해왔고, 그만둘 수 있는 기회도 분명히 있었다고 했다.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고, 더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결국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블루스를 선택한 것도, 블루스를 계속한 것도 한 번의 큰 결단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선택들의 누적이었다고 했다. 지금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를 계속 확인해왔을 뿐이라고 했다.
일출을 보러 가는 길에 그는 도시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다. 건물이 많아질수록 어둠의 느낌이 달라진다고, 같은 어두움이라도 종류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일출을 보러 가는 것도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와 일출을 보러 가기전 그는 작업 생각에 1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있다고 했다. 일부러 계획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시간에 깨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가 떠오를 즈음에는 말수가 줄더니, 해가 모두 떠오르고 점점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표정도 마치 깨어나는 것처럼 표정이 밝아졌다.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이렇게 금새 해가 떴잖아요.”라는 말을 했고, 그 말은 풍경에 대한 말처럼 들리면서도 굳이 다른 의미를 덧붙일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 아침은 그렇게 흘러갔다.






video and text By hong jeong bin
(Video Full :26min 44sec)
3. 블루스(Blues)
블루스 이야기는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작업 이야기 중간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고, 다시 작업 이야기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는 블루스를 설명하려 들지 않았고, 정의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블루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블루스 하면 떠올리는 것들이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거칠고, 술을 많이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고, 삶이 망가진 사람 같은 이미지 말이다. 그런 이미지가 왜 생겼는지는 이해하지만,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런 이미지가 블루스를 하나의 방식으로만 고정시켜버린다고 했다.그는 블루스가 반드시 거칠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장르를 좁힌다고 말했다. 블루스는 더 조용할 수도 있고, 더 부드러울 수도 있고, 훨씬 일상적인 상태로 존재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에는 자신이 어떤 블루스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는 블루스를 연주할 때 일부러 어떤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연주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게 지금의 자신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라고 했다.한국에서 블루스를 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 그는 그 말을 가볍게 쓰지 않았다. 예전에는 한국에 블루스 뮤지션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블루스를 한다고 말하면, 그다음 질문은 늘 비슷했다고 했다. 왜 하필 블루스냐는 질문, 한국에서 그게 되겠느냐는 질문. 그는 그런 질문들에 매번 답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계속 했을 뿐이라고 했다. 설명하기보다는 연주했고, 설득하기보다는 작업을 이어갔다고 했다.영국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졌다. 그는 영국에 1년 정도 있었다고 했다. 길지 않은 시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때는 한국에 블루스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목표를 세우고 영국으로 갔다고 했다. 그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 동안 자신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기준으로 삼게 되었는지는 지금의 작업 방식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단순히 연주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그는 영국에 있으면서 블루스를 더 ‘크게’ 느꼈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일상적으로 느끼게 됐다고 했다. 블루스가 특별한 음악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연주하고, 사람들이 듣고,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소비하는 음악이라는 감각을 그때 처음 제대로 느꼈다고 했다. 그 경험이 돌아와서도 블루스를 계속 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블루스가 여전히 설명이 필요한 음악이었지만, 그는 그 설명에 자신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이 느낀 방식대로 연주하는 쪽을 택했다고 했다.그는 블루스를 오래 해왔다는 말을 숫자로 설명하지 않았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언급되긴 했지만, 그 시간은 연표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대신 그 시간은 선택의 누적으로 나타났다. 다른 장르로 옮길 수도 있었고, 음악을 그만둘 수도 있었고, 아예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다고 했다. 그럴 수 있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결국 다시 블루스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 이유를 특별한 사명감이나 고집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냥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이 그거였다고 했다.그는 블루스를 하면서 부자가 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계속 가난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라고 했다. 음악으로 벌 수 있는 만큼 벌었고, 부족한 만큼은 감수하면서 살아왔다고 했다. 더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급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잘 산다는 말이 점점 돈과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사회에서, 그 기준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고 했다.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미화하지 않았다. 블루스를 해서 더 고결해졌다고 말하지 않았고, 고생을 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 선택을 오래 유지해왔고, 그 유지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블루스를 해왔다는 말은, 어떤 장르를 오래 연주했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상태를 오래 견뎌왔다는 뜻에 가까웠다. 선택과 불확실성을 반복해서 통과해왔다는 의미였다.그래서인지 그는 블루스를 이야기할 때도 늘 현재형이었다. 과거의 고생담으로 말하지 않았고, 미래의 계획으로 말하지도 않았다. 지금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 지금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블루스를 계속 한다는 말은, 앞으로도 계속 이 상태를 견디겠다는 말처럼 들렸다.그의 말에서 블루스는 음악 장르라기보다는 삶의 속도처럼 존재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 쉽게 끝내지 않고, 그렇다고 끝없이 미루지도 않는 속도. 그는 그 속도로 오래 살아왔고, 지금도 그 속도 안에 있었다.
2.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 머무르는 일
스튜디오로 돌아온 뒤에도 대화는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새로운 주제가 나오기보다는, 이미 했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다른 각도로 반복됐다. 그는 그 반복이 작업에서는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말했다. 같은 곡을 여러 번 듣고, 같은 부분을 여러 번 확인하고, 같은 질문을 다른 날 다시 던지는 과정이 없으면 작업은 쉽게 끝나지만, 쉽게 끝난 작업은 오래 남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결정을 미루는 것과, 결정되지 않은 상태를 견디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건 회피에 가깝지만, 충분히 고민하면서도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상태는 작업의 일부라고 했다. 믹스 과정에서는 특히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귀가 피로해지면 판단이 흐려지고, 그 상태에서 내린 결정은 나중에 후회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작업을 멈추고, 하루를 넘기고, 다시 듣는 방식을 자주 택한다고 했다.
말은 계속 같은 자리를 도는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씩 방향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기술적인 선택에 대한 이야기였다가, 점점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가장 경계하는 건 조급함이라고 했다.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선택이 흐려진다고 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끝내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 결과가 나빠진 경험을 여러 번 했다고 했다. 그는 오래 작업을 해온 사람답게, 끝내는 법보다는 버티는 법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있었다. 결정되지 않은 상태를 오래 견디는 것, 완벽하지 않은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상태에서 다시 다음 선택으로 넘어가는 것.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금의 작업 방식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블루스를 오래 해왔다는 말은, 단지 장르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상태를 오랫동안 견뎌왔다는 의미처럼 들렸다. 대화는 그렇게 흘렀고,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론 없음 자체가, 이 작업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4. 가족의 시간 그리고 예술가의 현재
그의 가정사는 이야기로 시작되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가 한참 다른 데로 흐른 뒤에, 아무 설명 없이 끼어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 그때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말. 이 말들은 순서대로 정리되지 않았고, 사연처럼 이어지지도 않았다. 그는 가정사를 꺼낼 때 특별히 말을 고르지 않았다. 숨을 고르지도 않았고, 분위기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의 상태를 말하듯이 이야기했다.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의 시간은 그의 말 속에서 크게 강조되지 않았다. 슬펐다는 말도, 힘들었다는 말도 길게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의 상태가 어떻게 변했는지, 병의 진행이 얼마나 빨랐는지, 그리고 보호자로서 어떤 제약이 생겼는지가 차분하게 언급됐다. 집을 오래 비울 수 없다는 말, 예전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말, 잠을 깊게 자기 어렵다는 말. 이 문장들은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 생활의 조건에 가까웠다. 그는 그것을 고난으로 정리하지 않았다. 그냥 지금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두고 있었다.보호자의 시간은 그의 하루를 바꿔놓았지만, 그의 태도를 바꾸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음악을 대하는 방식도, 작업을 이어가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이전보다 시간을 더 잘게 쪼개 쓰게 되었다고 했다. 오래 몰입하기보다는 가능한 시간 안에서 작업을 마치는 법을 익혔다고 했다. 그 변화는 타협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작업을 해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정에 가까웠다. 삶의 조건이 바뀌었고, 그에 맞게 작업의 리듬을 조정했을 뿐이었다.이 지점에서 블루스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그는 블루스를 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왜 계속 이 음악을 하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특별한 논리를 꺼내지 않는다. 다만 지금도 음악을 만들고 있고, 지금도 기타를 들고 있고, 지금도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있을 뿐이다. 블루스는 그의 삶을 구해준 장르도 아니고, 고난을 견디게 해준 도구도 아니다. 블루스는 그가 이미 오래전부터 살아오던 방식이다. 그래서 가정사가 그 음악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음악이 그 삶을 과장 없이 그대로 두는 역할을 한다.그는 자신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정사를 음악으로 치환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상태에서, 블루스를 연주하는 예술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어머니를 돌보는 시간과 작업을 하는 시간이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 날들도 있고, 집중이 흐트러지는 날들도 있지만, 그는 그것을 특별한 위기로 다루지 않는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그런 조건 속에서 작업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그의 신곡들에는 이 태도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노래가 삶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고난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예술가가 아니라, 지금의 상태에서 음악을 만드는 예술가다. 그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진솔한 이야기를 했느냐가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서도 말을 음악으로 옮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의 병, 보호자로서의 시간은 그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것들이 그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그는 고난의 주인공이 아니라, 그 모든 조건을 안고 블루스를 연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과장된 감정도, 극적인 서사도 없다. 대신 오래 살아온 사람의 리듬이 있고, 오래 작업해온 예술가의 태도가 있다.이 섹션에서 중요한 건 가정사가 아니다. 중요한 건 그가 그 모든 조건 속에서도 여전히 예술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별하지 않은 삶 속에서, 특별해지려 하지 않고, 블루스를 연주하며 살아가는 사람. 그게 이 섹션이 보여주려는 전부다.
5. 끝난 녹음, 끝나지 않은 상태
녹음은 예정된 시간 안에 끝났다. 마지막 테이크를 확인했고, 파일을 정리했고, 장비를 하나씩 치웠다. 그가 “이제 다 끝났네요”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일정으로서의 녹음은 끝났다. 더 이상 마이크를 세울 필요도 없고, 테이크를 다시 받을 필요도 없었다. 삼일 동안 이어졌던 집중된 시간은 그렇게 마무리됐다.하지만 끝났다는 말은 묘하게 충분하지 않았다. 녹음이 끝났다고 해서 바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건 아니었다. 방 안에는 여전히 소리가 남아 있었고, 말들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로 흩어져 있었다. 믹스 이야기는 다음 일정으로 미뤄졌고, 곡의 순서에 대한 대화도 결론 없이 남았다. 그는 이런 상태가 익숙하다는 듯 행동했다. 무언가를 완전히 닫아두지 않고, 다음 단계로 천천히 옮겨가는 방식이었다.짐을 싸는 동안에도 그는 음악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만 그 이야기는 계획이나 포부에 가깝지 않았다. 다음에 무엇을 하겠다는 말보다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말에 가까웠다. 지금은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말, 지금은 이 상태로 두겠다는 말. 이 글 내내 반복되어 왔던 태도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선택을 서두르지 않되, 멈춰 서지도 않는 상태.2박 3일 동안 그를 따라다니며 본 건 극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도 없었고,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도 없었다. 대신 같은 이야기들이 조금씩 다른 각도로 반복되었고, 그 반복 속에서 한 사람의 리듬이 드러났다. 작업을 대하는 방식, 삶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예술가로 존재하는 태도였다.이 기행은 어디를 다녀왔는지를 기록한 글이 아니다. 무엇을 했는지를 요약한 글도 아니다. 한 블루스 뮤지션이 2박 3일 동안 어떤 말들을 했고, 어떤 상태로 작업을 이어갔는지를 옆에서 지켜본 기록에 가깝다. 그 기록 속에서 그는 특별한 인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설명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하나의 서사로 정리하지도 않는다. 다만 음악을 만들고, 선택을 하고, 다음 날로 넘어간다.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특별한 작별 인사는 없었다. 다음에 또 보자는 말도, 의미를 부여하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게 이 시간에 어울리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이 2박 3일은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고,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자리도 아니었다. 그저 한 예술가가 지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상태를 잠시 공유한 시간이었다.이 글을 끝내는 지금도, 그의 작업은 어딘가에서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믹스는 다시 열릴 것이고, 곡의 순서는 또 한 번 바뀔 수도 있다. 그의 삶 역시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완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속도다. 빠르게 정리하지 않고, 천천히 이어가는 방식.이 기행의 끝에서 남는 건 어떤 메시지도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이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밀도다. 그 밀도는 요약되지 않고, 결론으로 닫히지도 않는다. 그저 계속된다.







(Full Video)
이 영상은 블루스 뮤지션 CR태규의 2박 3일 녹음 여정을 있는 그대로 따라간 기록입니다.
화려한 무대의 조명 대신, 남쪽 평야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그가 마주한 지금의 자신을 담았습니다.
























